유명 변호사 죽인 조폭…"내가 시켰다" 공소시효 착각 자랑하다 발각 - 머니S (2024)

유명 변호사 죽인 조폭…"내가 시켰다" 공소시효 착각 자랑하다 발각 - 머니S (1)
제주 대표 장기미제 사건인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55)가 27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2021.8.27/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21년 8월 20일, 미제로 묻혀 있던 제주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검거됐다.

용의자가 한 방송에 출연해 "처음부터 죽일 의도는 없었다. 혼만 내주려고 했는데 죽이게 됐다"고 고백하면서다. 이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생각한 용의자의 실수였다. 하지만 이 용의자는 결국 무죄를 받았다.

◇검사 출신 제주 변호사, 흉기 찔려 사망…족적도 안 남긴 범인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쯤, 제주시 삼도이동의 한 골목길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서 이 변호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혈흔이 도로에서부터 차량 내부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이 변호사의 가슴과 배는 예리한 흉기에 수차례 찔린 상태였다. 특히 이 변호사가 복부를 팔로 막았으나, 흉기가 팔을 관통해 복부를 찌른 것으로 보였다.

당시 돈과 소지품은 차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흉기에 찔린 흔적 등을 미루어 보아 원한에 의한 계획 살인, 청부 살인에 무게가 실렸다.

이 변호사는 제주 태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검사 출신 변호사였다. 사법연수원 14기로 김진태 강원지사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 등과 동기다.

부정부패를 바로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료 변론도 마다하지 않던 그의 사망 소식은 제주도는 물론 전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경찰이 이 변호사한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했으나, 미담만 나왔다. 당시 현장에는 CCTV도, 목격자도 없었다.

심지어 이 변호사가 피를 많이 흘려 범인이 이 혈흔에 족적을 남겨놓을 법도 한데, 현장엔 아무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른바 '프로'가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고 사라진 것이다.

부검 결과 흉골을 관통한 흉기가 심장을 찌른 것이 사인이었다. 이에 경찰은 보통의 흉기가 아니라 생각해 시중에서 유통되는 모든 흉기를 조사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1만 장의 전단을 배포하고 100만 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이 사용한 흉기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건이 미궁에 빠지면서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시간이 흘러 2014년 11월 5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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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내가 살인교사범…혼만 내주려 했다가 죽였다" 50대 조폭의 고백

공소시효 만료 이후인 2016년, 이 변호사의 아들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다"며 제보했다. 하지만 자료를 찾기도 어렵고 진척이 없자 제작진마저 취재를 중단했다.

3년 뒤인 2019년 10월, 제작진에게 '내가 이 사건에 가담한 범인 중 한 명'이라는 취지의 뜬금없는 제보가 도착하면서 다시 취재가 시작됐다. 제보의 주인공은 김 모 씨(당시 53)로, 그는 캄보디아에서 제작진을 만나 4시간이 넘도록 사건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이 내용은 2020년 6월 '그알'을 통해 방송됐다.

자신이 이 사건의 살인교사범이라고 주장한 김 씨는 "내가 제주지역 폭력조직 '유탁파'의 일원이었다. 두목이 이 변호사를 만나 겁 좀 주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난 같은 조직원이자 '부산 갈매기'라는 예명을 가진 손 모 씨와 상의했다"며 "손 씨가 '내가 하겠다'고 했다. 상해만 가하려고 했는데, 손 씨가 혼자 실행하다가 일이 잘못돼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를 만난 손 씨는 "원래 허벅지나 이런 데를 공격하고 혼만 내주려고 했는데 이 변호사가 너무 심하게 저항하길래 어쩔 수 없이 상체를 공격했다. 그래서 죽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이 변호사의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손 씨는 제주에서 벗어나 피신했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공소시효를 두 달 남겨놓고 극단 선택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었다.

아울러 김 씨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에 대해 "과도를 계속 갈아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직접 그림을 그려 보여줬다. 또 이동 동선과 골목길에 가로등이 꺼진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범인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내용이었다.

'왜 이제야 이런 사실을 밝히냐'는 물음에 김 씨는 "나도 지금 건강이 좀 안 좋고, 더 늦기 전에 유족들한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겁만 주려고 한 게 아니었다'며 애초부터 살해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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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 착각해 자백했다가…'태완이법' 덕분 22년만 체포

김 씨는 자신의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살인 교사를 자백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검거의 신호탄이었다.

그는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8개월 전인 2014년 3월, 사기 혐의로 수배 중에 해외에 출국해 13개월간 체류했다.

형사소송법 253조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 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이에 김 씨의 공소시효는 2015년 12월까지 연장됐다. 이 과정에서 2015년 7월 31일 이른바 '태완이법'이 시행되며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경찰은 김 씨를 살인 공범으로 기소했고, 김 씨는 결국 공소시효 만료 5개월을 남겨두고 법정에 서게 됐다.

경찰은 2021년 4월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캄보디아에 체류 중이었던 김 씨는 두 달 뒤인 6월 23일 불법체류 혐의로 현지에서 검거됐고, 8월 5일 추방이 결정돼 8월 18일 국내로 강제 송환돼 제주로 압송됐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용의선상에 이 변호사 가족이 오르기도 한 만큼, 방송 출연을 통해 피해자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유족으로부터 사례비를 받고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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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대신 유족에 사죄 뜻 전한 것…난 리플리증후군 환자"

경찰은 김 씨에게 살인 교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나, 검찰은 김 씨의 역할과 공범과의 관계, 범행 방법, 범행 도구, 자백 취지 인터뷰 등에 비춰 살인죄의 공동 정범이 성립된다고 봤다.

첫 번째 공판에서 김 씨는 검찰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은 이 범행에 전혀 가담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 씨가 2014년 사망하기 직전 나에게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고 이야기해 줘 듣게 됐다"며 "당시 손 씨는 괴로워하며 유족에게 사죄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인 손 씨 대신 유족에게 사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유족과 접촉하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며 "그러던 중 캄보디아로 갔고 후배인 이 모 씨를 통해 '그알' 방송사 PD와 연락이 닿아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고 싶어 인터뷰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내용 중 과장과 거짓도 있어 방송에 내보내도 괜찮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방송사 측에서 아무런 동의도 없이 내보내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됐다"며 인터뷰 일부 내용을 부풀리거나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김 씨 측 변호인도 "피고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리플리 증후군 환자라 허황된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피력했다. 다만 김 씨는 실제로 리플리 증후군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김 씨 측은 공소시효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완성 이전 시점에 마카오에 장기체류한 사실이 있지만, 해외 체류에 있어서 도피 목적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2022년 1월 10일 열린 결심 송판에서 검찰은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김 씨는 최후 진술에서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면서도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이제 와서 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저는 이 사건 범행에 관여하지도, 이 사건 범행을 실행하지도 않았다"고 거듭 억울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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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대표 장기미제 사건인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김모씨(55)가 지난 18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2021.8.20/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무죄→징역 12년→무죄…김 씨는 출소, 사건은 '미제'

2022년 2월 17일, 1심 판결에서 김 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보 진술은 신빙성이 인정됐으나, 살인 혐의를 입증할 만한 압도적인 증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김 씨가 자신의 인터뷰를 내보낸 '그알' PD를 협박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검찰과 김 씨 모두 항소했다. 5개월 뒤 이뤄진 항소심에서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그 결과 1심 판결을 뒤집고 김 씨는 살인 혐의에 대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가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지만, 방송 인터뷰 내용이 경찰 수사 결과와 대체로 부합한 점 등에 비춰 진술 중 일부는 사실이라고 봤다. 김 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2023년 1월 12일, 대법원은 공소사실을 입증할 정도로 증거와 근거가 충분하지 않고, 정황 증거만으로 손 씨와 김 씨가 살인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김 씨는 협박 혐의에 대한 1년 6월형 형량을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 구금 없이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 김 씨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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